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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 이미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중국에서 전해진 종이 만드는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그 우수한 명성이 중국에 까지 알려져 있었다.
 
       
   
 
         

한지란 닥나무 껍질의 섬유질을 이용하여 만든 전통 종이를 말한다. 한지는 벗기는 닥나무 껍질을 잿물로 삶고 두드려서 물에 푼 다음 대나무 발을 이용하여 섬유를 건져 올려 물을 짜고 말려서 만든 얇은 종이를 일컫는다.

닥나무와 뽕나무의 섬유질 등 천연 재료로 만들어지기 대문에 한지에는 자연이 가지는 질감을 그대로 갖고 있으며, 한지는 전통적인 한지 제작 방법으로 인해 곱고 질기며, 마치 살아서 숨쉬는 듯한 생명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한지는 추운 겨울에 차가운 맑은 물로 제작되는데 차가운 물은 섬유질을 탄탄하게 죄어주어 종이가 빳빳한 감촉을 가지면서 힘이 있고 질이 좋아 박테리아 등의 미생물이 번식하는 것을 막아주고 닥풀의 작용을 도와 매그럽고 광택을 더하게 하기 대문에, 차가운 물로 만들어진 한지는 일반 양지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다.

닥나무 껍질 외에 다양한 종류의 원료를 혼합하여 만드는 일본이나 중국의 종이에 비해 한지는 닥 섬유 자체의 결이 살아있고 견고하다. 제조방법으로 보더라도, 전통 한지는 앞뒤로 긴 발을 사용하고 상부 기둥 틀이 없어 전후좌우로 자유롭게 원료를 흘려보내는 물질이 가능한 제조법으로 인해 어느 방향이건 종이가 질기다. 반면, 일본과 중국은 좌우로 긴 발을 사용하고 상,하부 발들 사이에 원료를 가두어 주로 전후로 흔들어 종이를 만들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 잘 찢어지는 경향이 있다.

한지는 한국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깊숙한 곳에 하나의 문화적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오랜 이야기를 담은 책들과 선비들이 남긴 글들이 수백 년 지난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는 이유 역시 한지의 오랜 생명력을 나타내는 증거로 평가되고 있다. 일상에서 누구나 즐기며 만들어 사용하던 다양한 한지 공예품들은 오랜 시간 속에서도 그 삶의 자취를 남기고 있다.

             
       
             
  남북극시대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근대 및 현대  
  삼국시대는 한지의 태동기로서 6~7세기에 이르면 제지기술이 한반도에서 보편적으로 발전하였다. 그 증거로 610년경 고구려의 승려 담징은 법정과 함게 일본에 건너가 채색,종이,먹,맷돌 등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일본서기,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나온 최고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다라니경은 7m 가량의 닥나무를 원료로 한 두루마리로 천년을 넘어 현존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는 닥섬유로 만든 종이가 우리 종이로 정착되었으며 당시의 종이를 계림지라고 불렀다.   고려시대는 우리 종이의 새로운 도약기였다. 고려인들은 중국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뒤 더욱더 발전시켜, 중국인이 제일 좋은 종이라 칭하는 고려지(경지)를 만들어 냈다. 고려 정부에서는 전국적으로 종이의원료인 닥나무 재배를 장려하였다. 조선시대 한지의 발달사는 임진왜란(1592~1598)을 기점으로 전기와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기는 종이 만드는 기술의 완성기로 종이 생산을 관리하는 기관인 조지소가 설치되고, 기술과 원료가 다양해졌으며, 종이의 용도도 대중화된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는 연이은 환란으로인해 종이 만드는 기술이 쇠퇴하였다.   근대에는 일본을 통하여 서양식 기계로 제조한 종이가 수입되고 1901년 용산에 최초의 양지 생산 공장인 전원국조소가 설립된 이후 일반 대중 사이에 양지가 급속도로 퍼져 한지의 사용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서양 문화가 빠르게 들어오고 인쇄 기술이 발달하자 손으로 만드는 전통 한지는 급속히 쇠락하였다. 우수한 한지 문화의 긍정적 발전을 한지 장인이 되기 위한 체계적 훈련, 한지문화축제등을 통한 국민적 관심의 유도, 신상품 개발 및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